마가복음 14장 10-11절: 넘겨 줄 대상

해설: 

그 즈음에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찾아가 예수님을 넘겨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 대가로 은돈을 주기로 약속합니다(10-11절). 유다가 예수님을 넘겨 준 이유는 돈에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더 많은 돈을 요구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반란을 일으키도록 궁지로 몰아넣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분은 이상하게도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신 이후로 갈릴리에서 행하던 이적을 끊으셨습니다. 왜 그 이적의 능력을 억압하고 있는지, 그로서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궁지로 몰아 넣으면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떨치고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는 그 때부터 예수님을 넘겨 줄 기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마가는 “넘겨주다”라는 말을 두 번 사용합니다. 복음서에서 헬라어 ‘파라디도미’는 예수님이 죽음 당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전문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로마 총독에게 넘겨 주었고, 로마 총독은 군사들에게 넘겨 주어 그분을 죽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넘겨줌의 행동 배후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죽음에 넘겨 주었고, 성자 예수님은 그 뜻을 받아 자신을 군사들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그분이 그토록 무력하게 죽음을 당하신 것은 그분이 스스로를 넘겨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묵상:

한 인간의 생각과 선택과 행동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연루 됩니다. 오롯이 자기 자신의 자유 의지만으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혼자 만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고, 혼자 만의 삶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여 행한 일이라도 거기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영향이 미치게 되어 있고 그 사람이 처한 환경에 의해 영향 받기도 합니다. 한 인간의 판단과 선택에는 영적인 영향도 연루되어 있습니다. 악한 영은 끊임없이 그의 마음을 교란시켜 멸망의 길로 가게 하고, 하나님의 영은 그 사람을 생명으로 이끄십니다. 

이런 까닭에 예수님은 “조심하라”, “지켜 보라”,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잠시 방심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 의해 끌려 다니거나 환경에 지배 당합니다. 악한 영이 그 기회를 틈 타 마음을 사로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분의 영이 이끄시는 대로 살기 위해 힘쓰는 것이 우리가 치룰 영적 전쟁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매일 기도하고 말씀 묵상을 하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일입니다. 우리의 주권을 성령의 손길에 “넘겨 주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주체적인 존재요 독립적인 존재라고 착각합니다. 그것은 피조물로서의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누구에겐가 예속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본래 창조주의 사랑 안에 살도록 지어진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 다른 누군가 혹은 다른 무엇인가에 예속 됩니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에 자신을 “넘겨 주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실존입니다. 문제는 어떤 힘에 자신을 넘겨 주느냐에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그의 마음을 교란시키는 악한 영에 자신을 넘겨 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예수님을 권력자들의 손에 넘겨 주는 죄를 범합니다. 바울 사도는, 죄의 본질이 타락한 욕망에 자신을 “넘겨 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롬 1:24). 따라서 우리는 죄에 대해 핑계를 댈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자유의지를 오용하여 그릇된 것에 자신을 넘겨 준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마가복음 14장 10-11절: 넘겨 줄 대상”

  1. gachi049 Avatar

    인간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의 미리 예정된 인류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가룟유다를 사용하셨으리라 생각이됩니다. 즉 사도행전 1장 16절에 기록된 것처럼 성령이 다윗의 입을 빌어 미리 말씀하신 그 성경 말씀이 마땅히 이루어져야만 하였기 때문입니다. 왜 가룟유다를 택하셨는지를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주님의 뜻을 어찌 인간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다만 가룟 유다가 회개하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였다면 살아 남아서 사도 바울처럼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님! 인간은 늘 연약하고 변하기쉬우니 의도치 않거나 의도적으로 죄를 지었다고 해도 즉시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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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는 어리석은 양 입니다. 선한 목자의 인도하시는것 을 간구합니다. 특별히 갈림길에 서 있을때 주님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 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것이라고 고백 하면서도 삶이 따르지 않는 죄를 십자가 앞에 가져옵니다. 오직 주님의 뜻을 깨닫고 주님께 영광 드리는 삶을 살아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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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연약한 우리가 마음을 지키지 못해 거짓된 영에 속고 넘어지고 넘어가고 넘겨줍니다. 이런 일의 반복 속에서 다치고 상처 입고 상처를
    주면서 삽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야 하지만 혼자 살 수 없도록 지어진 존재입니다. 모순을 안은 채 모순과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삽니다.
    거짓과 혼돈의 영에 속을 수 밖에 없는 약한 존재지만 주님께 기대면 그분이 뿌리가 되어 주십니다. 가롯 유다를 뿌리채 흔든 불안과
    실망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요. 나라의 해방, 부조리 청산, 자유 회복, ‘정의로운 사회 구현’…등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사그라집니다. 이루어야 할 일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의 끝을 볼 것 같은 조급함이 대제사장들에게 가는 유다의 걸음을 재촉했을까요.그의
    마음을 어지럽혔던 초조함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종종 찾아 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셨지만 유다의 귀에는 이스라엘의 영광으로
    들렸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법을 보여 주셨지만 유다의 눈에는 하나님의 힘만 보였는지 모릅니다. 해설에서 목사님은 인간의
    실존은 무엇인가에 자신을 넘겨 주는 것이고, 문제는 어떤 힘에 자신을 넘겨 주느냐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무엇/에게
    넘겨줄 것인지, 또 나 자신의 무엇을 넘겨줄 것인지를 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무섭도록 큰 자유입니다. 어른에게서 사탕 한 알
    받아 먹은 아이가 사탕 값을 내라는 으름짱에 뭘 내놓아야 하는지 몰라 무섭기만 합니다. 가방엔 집문서도 있고, 유리알 같은 다이아몬드도
    들었는데 어느 것도 사탕 값보다 큰 것 같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참 많습니다. 뭘 가지고 있는 지 잘 모르는데 좋은 값을 줄테니 달라고
    합니다. 불편하고 무겁고 귀찮다는 생각에 내주고 맙니다. 귀한 것을 헐값에 넘겨준 걸 알고 눈물을 흘립니다. 우리 삶에서 마주치는 악은
    종종 이런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정당한’ 값을 쳐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받을만한 자격’이 충분하니 그냥 있지 말라고 부추깁니다.
    ‘너 대신 할 사람’이 많다고도 하고, ‘너 아니면 안된다’고도 합니다. 악이 원하는 것은 나의 중심입니다. 나의 뿌리와 핵심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시니 악도 그것을 갖고 싶어 합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 유다는
    하나님을 가이사에게 바칩니다. 하나님이 기꺼이 가십니다. 스스로를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사탕값을 대신 내 주십니다. 싼
    값에 당신을 기꺼이 파십니다. 우리에겐 울 일 만 남았습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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