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장 1-9절: 사랑이 한 일

해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의 노예 살이로부터 벗어난 날을 기념하는 축제입니다. 유대인의 달력으로 니산월 14일입니다. 유월절은 곧바로 무교절로 이어집니다. 니산월 15일부터 일 주일 동안 누룩 넣지 않은 빵(무교병)을 먹으면서 이집트를 탈출하던 조상들의 고난을 기억하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제사와 축제를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여듭니다. 

유월절이 시작되기 이틀 전(1절), 즉 오늘로 하면 마지막 주간의 수요일에 예수님은 베다니에 있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머무르고 계셨습니다(3절). 그 때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로마 총독에게 넘겨 처형시킬 방도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자극하여 폭동으로 이어질 것을 염려하여 축제가 끝나기까지 기다리기로 마음 먹습니다(2절). 하지만 일은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때문입니다. 

시몬은 한센씨 병으로 인해 격리되어 살다가 예수님을 통해 치유 받고 집에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과 그 일행을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나눕니다. 누가복음 7장 36-50절에 보면 동명 이인의 바리새인 시몬이 나옵니다. 그의 집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누가가 전한 사건은 갈릴리의 나인 성에서 있었던 일인 반면, 이 사건은 베다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과 그 일행이 음식을 드시는 중에 한 여자가 값비싼 “나드 향유 한 옥합”(3절)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삼백 데나리온(오늘로 치면 3만 달러 이상의 고액)도 넘는 값비싼 향유를 허비하는 것을 못 마땅히 여깁니다(4-5절).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면 얼마나 유익하겠느냐며 불평합니다. 예수님이 항상 가난한 사람들을 살피시는 것을 생각하고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칭찬을 듣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여자의 행위를 두둔하십니다. 그 여인의 행위는 당신의 장례를 위해 미리 준비한 것이라고 하십니다(8절). 사실, 그 여인은 그런 뜻으로 그 일을 행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향한 그의 사랑이 그렇게 행동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예수님의 장례를 위한 행위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으로 행하면 자신도 모르는 하나님의 일을 이룹니다. 바로 그것이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마다 그 여인의 행위도 전해져야 할 이유입니다(9절).

묵상:

누군가가 나에게 귀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당신이 나에게 너무 귀하여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라는 뜻입니다. 누군가가 그토록 귀하게 느껴지면, 그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집니다. 말로는 도무지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행동으로 표현할 방법을 찾습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표현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 사람을 위해 나에게 귀중한,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귀한 것을 얼마나 포기하느냐가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의 정도를 보여줍니다. 사랑의 감정이 그렇게 하도록 만듭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에게 큰 은혜를 입은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 은혜로 인해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존귀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분이 자기가 사는 동네에 오셨다는 소식을 들은 그 여인은 자신에게 가장 귀한 것을 드려서 그분께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나드 향유는 인도나 아라비아에서 수입된 명품으로서 그 여인에게는 최고로 값진 물건이었을 것입니다. 그 향유의 일부를 드려도 충분했는데, 그 여인은 향유병을 깨뜨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예수님의 머리에 다 쏟아 부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 집 안에는 향기가 가득해졌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부족했던 사람들은 그것을 무지한 여인의 분별 없는 행동이라고 여기고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여인의 행동을 두둔하고 나서십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그 여인의 행동도 전해질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그 여인은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인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행동으로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이 말하는 것처럼, 복음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자신에게 가장 귀한 것을 깨뜨려 바치게 하신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마가복음 14장 1-9절: 사랑이 한 일”

  1. gachi049 Avatar

    하나님께서 인류를 너무 사랑하셔서 당신의 가장 귀한 것을 깨트려서 구원하신 것처럼 모든 믿음의 공동체들도 하나님의 그지극한 사랑을 본받는 모두가 되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지상명령, 세상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온세상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가득차는 세상이 속히 올 수 있도록 성령께서 각 사람들과 동행하시고 인도하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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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랑에 빛을진 자 입니다. 주님 사랑 한다고 생각과 말로만 고백하는 위선자 입니다. 말로 다할수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온세상을 다 가젖다 해도 갚을수 없다고 핑계대는 죄인 입니다. 오직 십자가밑에 무릎을 꿇고 통곡 합니다. 모든 재물 재능 시간 몸 마음 혼을 주님발 아래 부럽지않게 내려놓는 용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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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여인의 이야기는 복음서 4권에 다 나와 있습니다.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이야기의 골격은 공통적입니다.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으니 몇몇 사람이 화를 냅니다. 식사 자리에 초대 받은 제자들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향유를 “낭비” 한다고 여자를 “호되게 나무랐습니다.” 예수님은 여자가 내 장례를 위해 향유를 부은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과 제자의 관점이 완전히 다릅니다. 낭비라고 못마땅해 하는 이유가 뭘까 잠시 생각해 봅니다. 덜 비싼 향유였으면 괜찮았을까요. 향유까지 부을 필요는 없고 감사하다고 여러번 말했으면 될 일이었을까요. 병이 나아 고마운 마음에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시몬에게 ‘뭐 이렇게 거하게 차렸어? 차라리 가난한 사람들을 먹이면 더 좋았을텐데’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의 화제성은 향유가 고가였다는 점, 제자들이 크게 비난했다는 점, 예수님은 이를 장례 준비라고 해석했다는 점 등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이야기의 때는 유월절이 되기 이틀 전이었습니다.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곧 죽을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 머리 속엔 곧 다가올 죽음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여자가 당신 머리에 향유를 부었을 때 예수님은 망자가 자신의 시신을 수습하고 염하는 것을 내려다 보는 심정이 되었을 지 모릅니다. 마가는 여자가 어떻게 예수님을 아는 사람인지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만 필경 은혜를 입은 사람이요 감사와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 이 자리에 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마음을 완전히 받으십니다. 고가의 향유를 부은 여자의 이야기는 복음의 일부가 되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몰라도 너무 모른 사람들과 예수님을 귀하게 여긴 여인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고 사랑하는 일을 관념적으로 말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소유를 내놓으면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대조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복음서 어디에도 예수님이 누구한테 뭘 받았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병고침을 받고 귀신에게서 풀려난 사람들, 말씀을 듣고 삶의 방향이 달라진 사람들… 그들은 예수께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뭘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본인들이 가난해서 드릴 수가 없었고 혹여 부자라 해도 식사에 초대하거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는 것으로 감사를 대신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이야기는 더욱 놀랍습니다. 여자가 드린 것은 고가의 향유 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 -생명과 사랑, 존경과 감사-을 같이 드렸습니다. 복음과 함께 “이 여인이 한 일도 알려져서” 기억되어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알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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