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3장 14-23절: 성전에 대한 심판

해설:

이어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의 심판에 대해 예언 하십니다(14절). 앞에서 그분은, 예루살렘 성전이 심판 받아 파괴되는 날은 곧 오겠지만 그것이 마지막 날의 징조는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니엘 9장 27과 11장 31절 그리고 12장 11절에 예언된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물건이 서지 못할 곳에 서는”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공격 당하여 부정한 것들이 성전을 황폐하게 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주후 64년부터 시작된 로마의 예루살렘 공격은 70년에 성을 점령하고 성전을 파괴하기에 이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상상하기에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사건을 예수님이 예언하신 것입니다. 

그 때가 오면 도피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15-16절). 하나님께서 심판을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맞서 싸우는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아이 밴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은 불행하다”(17절)고 말씀하신 이유는 도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여라”(18절)고 말씀하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그 날에 당할 환난이 유례 없을 정도로 극심할 것이라고 하십니다(19절). 그 때 하나님께 구할 것은 환난의 날수를 줄여 달라는 것밖에 없을 것입니다(20절). 

예수님은, “선택받은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그 환난의 날수를 줄여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20절). “선택받은 사람들”은 원래 선민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믿는 이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 때가 되면 그리스도로 혹은 예언자로 자처하는 영적 사기꾼들이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들은 “표징들과 기적들을 행하여 보여서”(22절) 자신을 그리스도로 믿게 하려 할 것입니다. 그 때 “선택받은 사람들”은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속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 사건에 대해 미리 알려 주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23절).

묵상:

예수님은 성전을 중심으로 한 율법 종교의 종말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율법과 예언을 완성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당신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셨고, 솔로몬 보다도 크고 요나 보다도 크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한 계시가 왔으므로 잠정적인 계시였던 율법은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율법 종교의 근거지였던 성전도 필요 없어졌습니다. 제사장을 중재자로 하여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만나던 시대는 저물었습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직접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그 귀중한 피로 우리의 죄를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완전한 계시를 거부하고 율법과 성전 제사를 붙들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기득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이 스스로 율법 종교와 성전 제사를 버리고 복음을 받아 들였다면 성전은 그토록 참혹하게 심판 받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종교인들이 율법과 성전을 생명처럼 붙들고 있었기에 그토록 참담한 심판이 필요했습니다. 그러한 운명을 알리기 위해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는 소동을 벌이셨습니다. 그들이 변화될 조짐을 보이지 않자 예수님은 성전을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전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흐름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분에게서 완전한 계시가 주어졌고, 그분 안에서 완전한 속죄가 이루어졌고, 그분 안에서 영원한 희망이 열렸습니다. 그 복음을 듣게 하시고 믿게 하심에 감사 드립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마가복음 13장 14-23절: 성전에 대한 심판”

  1. 마땅히 스올로 가야할 인생을 위해 보혈을 지나 아버지 하나님 품에 안겨주신 사랑과 은혜의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혼탁한 세상에서 힘들게 살고있지만 희망을 갖게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늘의 지혜로 사는 사귐의 소리 식구들이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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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죽을 수 밖에 없는 먼지와 같은 인생을 예수님 값으로 구원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처음과 마지막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종말은 분명 있을진데 그날을 알지 못하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심을 기억하고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 모두가 그날을 준비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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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예수님 곁에 가까이 있었던 제자들은 성전에 대한 말씀들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는 말씀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늘 올려지는 제사가 다 틀렸다고, 제사장들의 말과 행실에 속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전을 더럽혔다고 나무라십니다. 이렇게 사는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제자 가운데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과 안드레가 예수님께 종말에 대해, 마지막 때에 있을 징조가 어떨지 묻습니다 (12:3). 예수님의 답변은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조심하여라 (5절)”는 경고에서 시작합니다. 전쟁의 소문, 민족 간의 싸움과 기근이 있고, 예수 믿는 이들을 법정에 세우는 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날마다 바치는 제물 대신에 멸망의 역겨운 것으로 채워지는 것을 보게 되면 산으로 도망하라고 하십니다. 그런 공포의 시간 중에도 그리스도가 여기 계시다! 라며 혹세무민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는 당부입니다. 누가 들어도 이는 예수님이 유다를 무력으로든 정치적으로든 해방 시킬 것이라고 약속하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신의 앞날이 쉽지 않다는걸, 그러니 나를 따르는 너희도 쉽게 살 수 없으리라는 말씀이나 같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미리 일러주었다 (23절)”고 말씀하신 것은 무서운 미래를 놓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안심 시키려는 뜻이었을까요. 아무런 마음의 준비나 대책 없이 당하는 것과, 미리 들어서 알고 있던 것은 좀 다릅니다. ‘이럴 줄 알았다’와 ‘이럴 줄 몰랐다’는 다릅니다. 이번 시험은 어렵게 나온다는 ‘정보’를 들은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은 시험에 임하는 자세가 다릅니다. 예수님은 당신으로 인해 우리의 태도가 달라지기를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예수로 인해 한 차원 높아지기를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시험이 없기를, 있어도 쉽기를 바라면서 기도합니다. 시험과 고난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 예언자들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시험과 고난은 있습니다. 더 많이, 더 자주 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이 시험과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마른 땅을 골라서 걷지 않으셨습니다.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징표로서의 성전은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복음이 대신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이 지은 새 성전입니다. 예수님이 새 성전이고 복음입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주님을 마음에 담습니다. 복음이 나와 함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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