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3장 9-13절: 박해는 당연하다

해설:

앞에서 성전에 대한 심판, 전쟁, 기근, 지진 같은 환난에 대해 예고하신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이 믿음 때문에 겪게 될 박해에 대해 예고하십니다(9절). 제자들이 박해를 받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10절). 따라서 제자들과 신도들은 땅끝까지 나아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어 죽게 했던 세상은 예수의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복음 전하는 사람들을 권세자들에게 넘겨 주어 회당이나 법정에 서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일이 일어날 때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고난 당하는 것을 염려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염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할 말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11절). 성령은 모든 믿는 자에게 함께 하시지만, 복음을 증언하는 과정에서 더 강하게 역사 하십니다. 

믿는 이들이 겪을 환난은 권세 잡은 자들에게서만 오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은 믿는 이들을 미워할 것입니다. 때로 그 미움은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 사이까지 갈라 놓을 것입니다. 그런 환난 중에도 믿음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13절). 그것이 자신을 구원하고 또 세상을 구원하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묵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다른 세상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물질이 전부라고 믿는 사람과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같을 수가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입니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물질을 전부로 여기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달리 살아가는 사람들을 견디지 못합니다. 자신들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아도 자신과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견디지 못합니다. 그들로 인해 자신들의 죄 된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만일 믿는 이들로 인해 자신들의 안전과 이익에 해가 생길 것 같으면 혐오하고 배척하고 박해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경우에는 혐오와 배척과 박해가 더욱 심해집니다.

예수님은 이런 일도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복음을 제대로 믿는다면 달리 살게 될 것이고, 복음의 능력을 제대로 안다면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까지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복음에 대한 혐오와 배척과 박해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상황을 예고하시면서 예수님은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 복음 전하는 일을 멈추지 말라고 하십니다. 땅끝가지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혐오와 배척과 박해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움츠러 들고 물러설 것이 아니라 더욱 용기를 내야 합니다. 마땅히 할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복음을 믿는 이들에게는 성령이 내주하십니다. 성령께서는 항상 믿는 이들 가운데 역사하시지만, 복음을 전할 때 가장 활발히 일하십니다. 성령의 임재를 더 강하게 경험하기 원한다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참여하면 됩니다. 

셋째, 끝까지 믿음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구원은 이 세상에서 잃을 수 있는 모든 것에 비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마가복음 13장 9-13절: 박해는 당연하다”

  1. 온 세상이 성도들과 교회를 멸시하고 핍박하는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형편입니다, 비록 환란과 시련과 박해가 올지라도 함께하시는 주님을 믿고 복음을 세상에 기도와 삶으로 전하기를 원합니다. 보이지 않는것을 확신하는 믿음을 원합니다. 북한의 신자들을 성령께서 함께하실줄을 믿습니다. 마지막 숨쉴때까지 변절하지않고 모든 사귐의 소리 식구들이 주님과 동행하며 담대한 부활의 증인들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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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gachi049

    구원을 받기위해서는 어떤 핍박과 환난과 고난과 죽음이 닥쳐 오더라도 예수님을 굳게 믿고 세상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약자를 귀히여기며 배타적이 아니라 이타적인 삶으로 살아갈때 성령님께서 내안에서 일하심으로 굳은 믿음이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변치않게 간절히 바라고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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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복음이 복음으로 들리는 것은 성령이 그렇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해도 복음으로 듣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증언과 고백은 어떤 이들에겐 ‘불편한 진실’이 되기도 합니다. 내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한 사람은 엄마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단순한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시고 이끄신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을 갖고 있으면 “마음을 턱 놓고 살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어린 내 눈엔 엄마와 하나님이 동격이었습니다. 엄마한테 말하면 다 해결 되었습니다. 지금의 눈으로 당시의 엄마를 보면 지식 면에서 너무도 부족하고, 경험이나 사회관계도 엉성하고 그래서 ‘틀린’ 생각과 말도 많이 했던 평범한 아줌마였지만 나는 엄마의 사랑을 먹고 자랐기에 엄마가 전하는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은 복음이었습니다. 당시 어른들의 말 속에 자주 등장하는 보증수표였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가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받을 것 (13절)”이라고 말하십니다. 전에는 이 구절을 종교적인 레프런스 안에서 이해했습니다. 전도와 선교의 중요성, 핍박에 대한 인내, 흔들리지 않는 믿음, 구원의 조건과 자격…등을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미움에 대한 사고의 창이 열리면서 좀 더 넓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불편한 진실,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어디로 사라지지도 않는 진실들을 어떻게 대하며 사는지 생각해 봅니다. 예수의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교라는 종교를 권하기 때문에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이름에 담긴 진리가 마음에 가시처럼 박히는 사람은 그런 가시를 준 사람이 미울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진리 앞에서 마음이 열리기를 원하거나 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 만이 아니라 진리에 찔려 아픔을 받는 사람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해방과 기쁨을 맛보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복음을 알아 듣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곧 일어나’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복음을 듣고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귀한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 앞에 겸손해지기를 기도합니다. 박해의 두려움을 넘어가는 데까지 믿음이 자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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