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장 15-19절: 종교 소비자

해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신 후 곧바로 성전으로 가십니다. 성전 본체 바깥에는 넓은 마당이 있었습니다. 그 마당은 ‘이방인의 뜰’이라고 불렸는데, 하나님을 믿는 이방인들이 예배 드릴 수 있도록 마련된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그 마당에는 성전 제사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파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어디에서도 이방인들이 모여 기도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사장들은 제사에 쓸 짐승을 엄격하게 검사하여 흠이 없는 것만을 허용했습니다. 그들은 순례자들이 가져 온 짐승에 대해 온갖 트집을 잡아서 불합격 시키고는 성전 상인에게서 제물을 사게 만들었습니다. 상인들과 제사장들의 결탁이 있었기에 성전에서 파는 짐승들은 아무 문제 없이 검사를 통과 되었습니다. 

순례자들은 제사 드리기 전에 성전세를 내야 했는데, 당시에 사용되던 동전에는 로마 황제나 신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전세나 헌금을 드릴 때 환전상에게 로마 동전을 성전용 동전으로 바꾸어 드리게 했습니다. 환전상들 역시 제사장들과 결탁하여 부정한 이득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제물을 파는 장사꾼들을 내쫓고 환전상들의 상을 뒤엎었습니다. 또한 정해진 길로 다니지 않고 “성전 뜰을 가로질러”(16절) 물건을 나르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 소동으로 인해 잠시 동안 성전 제사가 중단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상인들과 제사장들의 부정한 결탁을 공격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성전 제사 자체를 중단시키려 하신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은 이사야 56장 7절과 예레미야 7장 11절을 인용하여 말씀하십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게 하려고 이방인의 뜰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자리에서 부정한 상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질타하셨습니다. 오백 여년 전, 예레미야는 성전문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성전이 “강도들의 소굴”이 되어버렸다고 비판 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성전은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이 말씀으로 예수님은 예레미야 시대에 일어난 일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암시를 주십니다. 

이 소식이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전해집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행하고 있는 부정에 대한 폭로요 그들이 누리고 있던 기득권에 대한 공격이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예수님을 처치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하지만 무리가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고 있었기에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예수님은 다시 베다니로 가셔서 쉬십니다(19절).

묵상:

종교가 타락하면 종교 지도자는 “종교 장사꾼”이 되고 믿는 이들은 “종교 소비자”가 됩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 지도자들은 종교 장사꾼으로 전락하여 성전에서 행해지는 모든 일을 통해 부정한 이득을 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규정을 정할 때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벌어들일 이득이 기준이 되었습니다.

믿는 이들은 종교 장사꾼들의 선전에 속아 “종교 소비자”로 전락했습니다. 제사도, 예배도, 기도도 모두 한 번 쓰고 버리는 상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종교 활동은 화려하고 부산했지만, 그들의 존재는 더욱 타락해 갔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성전 구석 구석을 돌아 보시면서 확인한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하나님이 없고, 거룩한 집에 부정한 탐욕만 가득했습니다. 

목사로서 이 말씀 앞에서 두려움을 느낍니다. 바울 사도는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살아가는 장사꾼”(고후 2:17)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도 종교 장사꾼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들의 선동 선전에 넘어가 자신을 만족시키는 종교를 소비하기 위해 몰려 다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요! 그것을 알기에 바울 사도의 말대로 “하나님에게서,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고후 2:17)에 살아가도록 힘쓰기를 다짐합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이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 생활, 예배, 기도, 말씀 묵상 등을 당신은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마음에 평안을 얻고 자기의를 쌓아 올리기 위한 소비재로 여깁니까? 아니면 그런 활동을 통해 하나님과의 하나됨을 더욱 온전히 이루기를 소망하고 있습니까?


Comments

3 responses to “마가복음 11장 15-19절: 종교 소비자”

  1.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나의 육신이 성전인것을 고백합니다. 가정과 교회가
    성전입니다. 욕심 교만 시기 질투 비겁한것과 미련한것 거짖과 위선을 깨끗이
    보혈로 씻고, 몸과 마음과 혼이 또한 가정과 교회와 나라가 주님앞에 바로서고
    새롭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사귐의 소리 식구들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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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종교, 지도자는 물론하고 종교인까지 타락하여 여기저기에 눈을 돌려 기웃거리고 무속인에게까지 찾아가 자신의 위로를 찾아 헤메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예수라고하는자, 일개 무속인 입에서 아무때나 흘러나오는 말을 국정에 반영하여 나라가 나가야할 방향을 잃고 있어 국내외적으로 신뢰를 떨어트리고 있는 정부를 옹호하는 기독교 단체 지도자들등, 사이비 종교지도자가 어린아이를 20년동안 연금 상태로 가두어 배우지도 못하고 인간으로서 인격을 형성하지 못하게하여 오로지 성노리개로 학대한 사실, 또한 자연재해와 전쟁등 이런 현상이 심판주로 오시는 예수님의 재림의 시간이 닥아옴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혼란한 가운데 날마다 말씀 묵상과 기도로, 특히 사순절 새벽예배를 통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동행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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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는 것은 아직 과일이 달릴 때가 아니기 때문이라는걸 몰라서 예수님이 화를 내신 것이 아닐 것입니다. 먼 데 사는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올 때에는 제사에 쓸 짐승을 현지에서 구입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 제물로 가져 온 것이 중간에 상했거나 흠이 나서 바칠만 하지 못할 때 대체품들을 준비해 놓아야겠다는 생각 등을 예수님이 이해하지 못해 장사꾼들을 몰아 내신게 아닐 것입니다. 순례자들의 편리를 도와 제사가 잘 진행 되도록 신경 쓰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시작은 순수했지만 중간에 변질 되어 흉하게 되는 일을 봅니다. 나의 본 뜻은 그게 아닌데 어딘가에서 부터 틀어져 이상하게 되는 일도 겪습니다. 안일한 생각, 작위적으로 하는 행동, 나 중심적인 판단…등등이 부패를 가져 옵니다. 의도한대로 잘 된다 싶으면 과욕을 부립니다. 막히거나 풀리지 않으면 무리를 합니다. 그래서 깨어 있으라고 하시나 봅니다. 정신 차리고 일을 잘 지켜 보라고, 자신을 늘 살펴 보라고 하시는 말씀인가 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하신 일을 전해 들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반성이나 사과, 회개가 아니라 장애물 제거를 택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변화를 가져오고 그 변화는 자기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데까지 갈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사장으로 태어났지만 사는 것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사장 가문에 태어났다는 것은 제사장이 직업이 아니라 정체성이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께서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제사장은 백성의 정체성을 상기시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전심을 기울이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삶의 질서를 점검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게 하소서. 내 마음의 성전에서 치워야 하는 것들을 생각나게 하시고, 또 단호하게 치우도록 도와 주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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