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장 12-14절: 생명의 주인이시기에

해설:

다음 날 아침, 예수님은 다시 베다니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십니다. 식전이어서 시장하셨던 예수님은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다가가십니다. 하지만 그 나무는 잎만 무성할 뿐 열매가 없었습니다. 아직 “무화과의 철” 즉 열매가 익을 때는 아니었습니다(13절). 이스라엘에서 무화과나무는 유월절 즈음(3월 말에서 4월 초)에 가지에서 열매가 나기 시작할 때입니다. 예수님은 그 나무를 향해 “이제부터 영원히, 네게서 열매를 따먹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14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무화과나무도 생명체인데,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그 나무를 저주하시다니요! 그 나무에게 저주 받을만한 이유도 없었습니다. 먹을 만한 열매가 열리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다짜고짜 이렇게 저주하시다니요! 예수님이 시장하여 짜증을 내셨을 리도 없고, 애꿎게 말 못하는 나무에 풀어야 할 분노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행동은 바로 앞에 나오는 11절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곧바로 성전으로 가셔서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자세히 둘러 보셨습니다. 베다니로 돌아오신 그분은 성전에서 본 것들에 대한 생각으로 잠을 못 이루셨을 것입니다. 성전은 수 많은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지만 정작 하나님의 뜻은 철저히 외면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그 성전을 그대로 두시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은 밤새도록 기도하셨는지도 모릅니다. 

다음 날, 예수님은 일찍 일어나셔서 아침 식사도 하지 않으시고 성전으로 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형식만 무성한 성전 종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할 참이었습니다. 비장한 마음으로 길을 가는데,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보였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비유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에게는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그 나무가 이스라엘과 성전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행동하셨습니다. 이것은 같이 동행했던 제자들에게 보여 주려는 상징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묵상:

예수님은 모든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요한복음 1장 3절이 말하듯, 모든 것은 그분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인간만이 아니라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그분에게서 창조 되었습니다. 생명이 없는 물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을 아끼고 사랑하셨을 것입니다. 그분은 공생애 기간 동안에 인간만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에 대해서도 가르침을 주셨을 것입니다. 또한 다른 생명체들을 귀하게 여기는 행동의 모범도 보여 주셨을 것입니다. 그분은 모든 사물을 관조적으로 대하셨기 때문입니다.

불행하게도, 복음서의 저자들은 인간 외에 다른 생명체들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자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전하기에 꼭 필요한 이야기들만을 기록하기에도 지면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끔 그분이 다른 생명체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계셨는지를 옅보게 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사십 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실 때 “예수께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다”(1:13)는 기록이 그 예입니다. 아씨시의 프랜시스가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도 모든 생명을 소중히 하셨고 깊은 영성으로 그 생명들과 소통하셨던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사건을 두고, 예수님이 말 없는 생명에 대해 너무나 무자비하시다고 비판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제가 그렇게 했다면, 그런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은 그 나무가 미워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고, 짜증 나서 그렇게 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 그 나무를 택하여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린 것처럼, 그 나무는 생명의 주인에게 자신을 기꺼이 드린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타셨던 어린 나귀, 무리가 꺾어서 길에 깔았던 나무 가지들 그리고 저주 받은 무화과 나무–이것들은 모두 생명의 주인에게 선택되어 하나님의 뜻을 위해 희생되었습니다. 그런 뜻이라면 저의 이 몸도 기꺼이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 손에 올려 놓기를 소망합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마가복음 11장 12-14절: 생명의 주인이시기에”

  1. 나의 구주 하나님은 온 우주의 창조주 이시고 전지전능 하신 주님 이신것을
    고백 합니다. 그러면서도 모양새는 그럴듯 한데 내용은 더럽고 악취가 나는
    비천한 존재 입니다. 열매가 없이 잎이 무성한 무화과 나무와 같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시냇가에 심겨저서 철마다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사귐의 가족들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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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마음대로 다스리신들 누가 반항하고 항변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지금 당장에 무화과 나무처럼 생명을 거두어 가신들 항변할 수 없습을 고백합니다. 무화과 나무처럼 재물과 건강한 육신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성령의 열매가 없다면 마지막 심판주로 오실때에 그냥두시지 않을 것이라는 예고의 말씀으로 믿고 다시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에 만전을 기할 수 있도록 남은 여정가운데 성령님께서 동행하시므로 날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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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대체 무화과나무가 뭐길래, 어쨌길래 예수님은 “다시는 never” 이라고까지 하셨을까…하는 궁금증이 있습니다. 풀리지 않는 궁금증입니다. 무화과나무로 인해 궁금증이 생기는 본문은 또 있습니다. 요한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첫번째 제자 몇 사람을 들이십니다. 그 처음 제자들 중에 빌립이 있고 그는 친구 나다니엘에게 찾아가 모세와 예언자들이 기록한 그분을 찾았다며 예수님께로 가자고 권합니다. “나사렛에서 뭐 좋은 것이 나오겠는가?”라고 미심쩍어 하는 나다니엘이 예수님께 가자 예수님은 그를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시며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때 등장하는 무화과나무나, 오늘 본문에서 저주 받아 말라 죽는 무화과나무나 복음서 기록자들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무가 자주 나옵니다.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올리브나무…하물며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까지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 사람을 살게 하실 때 아름답고 먹기 좋은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들 (창 2:9)을 두어 자라나게 하셨습니다. 나무는 나무일 뿐이면서 또 그 이상입니다. 우리의 언어는 이중 삼중의 의미를 갖습니다. 신발은 발에 신고 다니는 물건이지만 누군가에겐 고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가 댓돌에 벗어 둔 삶의 무게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신분의 상승과 꿈의 실현을 약속하는 희망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나무는 하나님의 질서와 공의를 대신 말해주는 상징일 때가 많습니다. 자기 과수원의 열매를 먹고 살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굶주림이 없고 수고와 결실이 조화로운 세상을 상상하게 합니다. 오늘 예수님 눈에 들어온 무화과나무는 제 할 일을 하지 않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린 삶을 보여 줍니다. 아직 무화과가 열릴 때가 아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실은 맞지만 ‘진실’은 맞지 않습니다. 무화과나무의 진실은 무화과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배고픈 예수님이 굳이 때가 아닌 나무를 들여다 보며 먹을 만한 것을 찾는 그림은 어색하기 그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였어도 잎사귀가 무성하고 잘 자란 나무를 보면 다가가서 살펴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을겁니다. “뭐야, 근데 열매는 없잖아. 순 사기야?” 나다니엘이 무화과나무 밑에서 무엇을 했는지, 예수님은 뭘 보셨는지, 또 그게 무엇이길래 나다니엘은 곧바로 무릎을 꿇었는지…그 때 그 자리로 가지 않는한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서를 읽고 묵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통치를 묵상하고 또 상상합니다. 거짓과 위장이 무성한 세상은 하나님이 지으신 에덴 동산이 아닙니다. 아름답고 먹기 좋은 열매를 맺는 과수원의 주인이신 하나님, 그분의 은혜를 묵상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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