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31장 10-31절: 지혜를 체화한 사람

해설:

10절부터 31절까지는 지혜로운 아내의 덕에 대한 묘사입니다. 이 본문은 ‘이합체 시형식’(각 문장의 첫 글자를 히브리어 알파벳의 순서를 따라 지은 시)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는 앞에 나오는 르무엘 왕의 잠언의 일부가 아니라, 편집자가 잠언 전체의 결론으로 삼은 별개의 시편입니다. 

새번역에서 “유능한”(10절)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하일’은 일을 이루는 능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소임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도덕적 능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후자의 의미를 고려한다면, 개역개정의 “현숙한”이라는 번역이 더 좋아 보입니다. 

여기에 묘사되어 있는 여인은 실재하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상적인 인물에 대한 묘사입니다. 이 여인은 지금까지 잠언에서 강조되어 온 모든 지혜를 체화한 사람입니다. 지혜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호크마’는 여성 명사이므로 이상적 여성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여인은 신실하게 주님을 섬깁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1:7)이므로 그 여인은 지혜 안에서 성장합니다. 그렇게 성장하여 지혜를 완전히 체화하면, 그 여인은 자신의 본분과 역할을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의 책임을 기쁘게 수행합니다. 그 여인에게는 “자신감과 위엄”이 몸에 배어 있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25절)이 없습니다. 남편과 자식들만이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이 그 여인의 덕을 입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그 여인을 높이 존경하고 칭송합니다. 

묵상:

어릴 때 교과서에서 읽었던 현진건의 <빈처>라는 소설이 생각납니다. 성 역할이 고정 되어 있다고 생각하던 시기에는 현숙한 아내에 대한 이런 류의 묘사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여성 혹은 아내는 당연히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고 방식에서 나온 개념이 ‘현모양처’입니다. 현숙한 여인에 대한 묘사는 동양 문화권에서 현모양처에게 기대한 것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시편은 여인의 성역할을 고정해 놓고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잠언의 편집자는 지혜를 체화한 사람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려 놓은 것입니다. 지혜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호크마’가 여성 명사이기에 아내를 비유로 삼았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 시편은 지혜의 근본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지혜를 따라 사는 것은 자신과 이웃과 사회를 복되게 하는 최선의 길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시편은 잠언 1장과 ‘수미쌍관’을 이루어 잠언서를 결론 짓는 것입니다.

이 시편에서 제시한 이상은 누구도 완전히 실현할 수 없습니다. 온전히 실현할 수 없기 때문에 ‘이상’이 되는 것이고, 독자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입니다. 말씀은 언제나 나보다 몇 걸음 앞 서 갑니다. 따라 잡았다 싶으면 또 몇 걸음 달아납니다. 그렇게 하여 말씀은 우리를 부단히 인도하여 나아갑니다. 그렇게 걷다가 돌아서 보면, 멀리 걸어온 것을 보고 감사를 드립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잠언 31장 10-31절: 지혜를 체화한 사람”

  1. 지혜의 근본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며, 지혜를 따라사는 것은 자신과 이웃과 사회를 복되게 하는 최선의 길 임을 믿고 지혜의 말씀을 체화하여 삶으로 살아내는 오늘하루가 되기를 원하오니 성령께서 동행하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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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Valentine day 하루 앞두고 아내와 두 딸들과 세 손녀들을 생각을 하게하시는 말씀입니다.
    두 사위와 손자 에게도 그리고 곧 태어날 증 손자 에게도 모두 사랑 한다고 고백할 작정입니다.
    모두에게 하늘의 귀한 지혜로 세상 살이 하도록 간절히 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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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현실에서 마주치는 상황이 어떠하든지 잠언 마지막 장 후반부의 ‘현숙한 여인’은 능히 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사막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고 북극에서도 살아 돌아올 사람입니다. 저자는 여인을 그리는 시에서 공동체에 유익한 사람을 그립니다.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나 성품, 가문 등을 그리지 않고 남편이 신뢰하고 여종들이 존경하며 궁핍한 이들이 고마와하는 여인이라고 노래합니다. 지금은 잠언의 저자가 보던 시대와 많이 다릅니다. 현대 문명이 파괴된 종말 이후의 세계관 post- apocalyptic world view 을 담은 창작물이 인기 있어 트렌드 면에서 대세입니다. 기존의 질서를 해체하고 새 질서를 세우는 일은 산고의 고통을 겪고 새 생명을 내는 일만큼 어렵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지 않는 세계야말로 종말을 맞이한 세계이고 밤이 계속되는 시간입니다. 그런 눈으로 본문을 보면 공자왈 맹자왈 같은 답답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다른 각도에서 다시 읽어봅니다. 상상력을 갖고 읽습니다. 뮤지엄에 걸린 그림 중에 본문을 연상 시키는 그림들이 있습니다. 학교에 가는 아들에게 빵과 버터를 챙겨 손에 들려 보내는 엄마를 그린 그림도 있고, 집을 방문한 손님 (관객) 앞에 화목한 가정을 보여주는 정숙한 여인이 있는 그림도 떠 오릅니다. 물레질을 하고 베를 짜는 (19절) 여인의 그림도 상상하기 어렵지 않고, 힘 있게 허리띠를 묶고 자기 할 일을 당차게 처리하는 (17절) 중년 여인의 몸은 우리 눈에 친숙하기 까지 합니다. 잠언에서 여인은 지혜를 체화한 것일 때도 있고 반대로 죄와 벌의 상징이 될 때도 있습니다. 아담이 특정 인물의 이름이면서 모든 사람의 대명사인 것처럼 잠언의 여인을 이상적인 사람의 아바타로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해설에서 고백하듯 성경의 말씀은 늘 나보다 몇 걸음 앞 서 나갑니다. ‘눈높이 교육’이 아니라 계속 월반해도 끝이 없을 것 같은 공부입니다. 지혜로 오신 주님이 인도하시는 지혜의 길을 앞에 간 여인들을 따라 오늘도 걷고자 합니다.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공동체의 삶과 지혜를 허락해 주소서. 잠언서의 숲을 걸어 나오니 언어가 고상해지고 생각이 선해졌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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