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이 장에 나오는 잠언들은 아굴에게서 전해진 것들입니다. 아굴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1절의 두번째 문장은 두 가지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새번역처럼 번역한다면, 아굴의 잠언을 전해준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새번역 난외주에 나와 있는 것처럼, “그가 말하였다. ‘하나님, 저는 피곤합니다. 하나님, 저는 피곤합니다. 제가 어떻게 힘을 되찾을 수 있습니까?’”라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후자의 번역이 옳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2-3절에서 표현된 감정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아굴은 자신이 우둔한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고 탄식합니다(2절). 지혜를 배우지도 못하였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깨우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3절). 지혜를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그가 원하는 것에 비하면 그가 얻은 지혜란 보잘 것 없어 보였기에 이렇게 탄식합니다.
이어서 그는,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지혜와 비밀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세개의 수사적 질문으로 표현합니다(4절). 온 우주와 모든 생명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의 생각을 인간이 어떻게 더듬어 알 수 있겠느냐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분의 말씀에 귀기우리고 돈독하게 순종할 뿐입니다. 그럴 때 그분은 우리의 방패가 되십니다(5-6절).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그분 앞에 선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겸손히 고백한 다음, 아굴은 두 가지의 청을 주님께 올립니다(7절). 첫째로 그는 자신의 존재를 위해 기도합니다(8절 상). 허위와 거짓말을 멀리하여 진실한 사람으로 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는 자신의 조건을 위해 기도합니다(8절 하).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하지 말고, 생활에 필요한 만큼만 가지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9절에서 아굴은 그 이유를 밝힙니다. 물질적으로 부해지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부인하기 쉽고, 곤핍해지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을 욕되게 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몇 가지의 악행을 거론합니다. 주인에게 종을 비방하는 것(10절), 부모를 저주하는 것(11절). 위선(12절), 교만(13절)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14절)이 그것입니다.
묵상:
‘아굴의 기도’는 성경에 나오는 여러 기도문 중에 ‘주기도’ 다음으로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기도문입니다. 사람들이 이 기도문을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이라면 마땅히 바랄 것을 기도로써 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먼저 진실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소유보다 존재가 더 우선이며, 환경보다 내면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소유에 대해 기도합니다. 소유에 대한 기도에서도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소유의 많고 적음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에 손상을 입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기도문을 읽으면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마음에 차 있던 헛된 욕망들이 가라앉는 것 같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가 선명 해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이 기도문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정말 이 기도가 자신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지를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진실하고 정직하게 산다는 것은 손해를 각오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주기도’에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가르치셨는데, 우리는 평생 먹을 양식을 확보하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기왕이면” 부자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면서도 이 기도문을 좋아하는 것은 욕망을 포장하려는 속임수가 아닌지 자문해 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아침에 아굴의 기도가 화살처럼 마음에 와 박힙니다. 우리 마음에 숨기고 있는 더러운 욕망을 꺼내 보여 주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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