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6장: 믿음과 겸손

해설:

16장부터 22장 16절까지는 왕실에서 형성된 잠언들이 많이 나옵니다. 10장부터 15장에 수록된 잠언들과 성격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 장에는 인간의 노력과 하나님의 통치 사이의 관계에 대한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모든 것이 사람 하기 나름인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을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인간은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생각에 따라 계획을 세우고 일을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인간의 모든 노력은 허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겸손히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습니다(1절, 3절, 9절).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그 쓰임에 맞게 만드셨고(4절), 사람들을 그 행위에 따라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5-7절). 

아울러 지도자의 태도에 대한 말씀이 자주 나옵니다. “왕이 내리는 판결은 하나님의 판결이니, 판결할 때에 그릇된 판결을 내리지 않는다”(10절)는 말은 “왕은 언제나 옳다”는 뜻이 아니라 “왕은 자신의 판결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바르게 판단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왕권은 강한 권력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의로만 왕위가 굳게 될 수 있기 때문”(12절)입니다. 그러기 위해 왕은 “공의로운 말”과 “올바른 말”(13절)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왕의 기쁨은 곧 백성의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15절).

이 장의 후반부에서는 겸손의 덕에 대한 말씀이 강조 됩니다. 교만은 파멸로 가는 길이고, 겸손은 높임을 받는 길입니다(18절). 거만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물질적으로 이득이 된다 해도 겸손한 사람들과 함께 하며 마음을 낮추는 편이 더 좋습니다(19절). 겸손한 사람은 말씀을 따라 조심하며 삽니다(20절). 그런 사람은 말이 지혜롭고 설득력이 있습니다(21절, 23절). 그런 사람의 말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 줍니다(24절). 반면, 교만한 사람은 비뚤어진 말로 다툼을 일으키고, 불화를 조장합니다(27-28절). 

묵상: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권에서도 인간의 노력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알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는 어떤 초월적인 힘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삼국지에서 유래했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같은 금언이 그 예입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행한 후에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말은 인간사를 주관하는 초월적인 힘이 있다는 믿음을 반영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에 정한수를 떠 놓고 빌기도 했고, 점성술에 의지하기도 했으며, 이도저도 안 되면 팔자소관으로 치부하고 체념 하기도 했습니다.

성서는 그 초월적인 힘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해 줍니다. 그 하나님은 어떤 원리나 힘이 아니라 인격입니다. 생각하고 뜻하고 느끼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께 기도하고 그분의 뜻을 찾습니다. 나의 뜻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따라 행하는 것이 복된 길이며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께 자신의 존재를 맡기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겸손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복된 길을 가며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칩니다.

“백발은 영화로운 면류관이니, 의로운 길을 걸어야 그것을 얻는다”(31절)는 말씀은 노인 공경에 대한 교훈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노인을 공경하라는 가르침이 아니라 존경 받는 노인이 되라는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지혜의 말씀을 따라 의로운 길을 꾸준히 걸어가면 노인이 되었을 때 영화로운 면류관을 쓴 것처럼 존경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흔한 유행가의 가사를 인용한다면, 의로운 길을 가는 사람은 늙을수록 낡아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잠언 16장: 믿음과 겸손”

  1. 항상 모든것을 주관 하시고 결정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항상 의지 하기를
    기도 합니다. 허락 하신 상황 에서 최선을 행하는 결단을 원 합니다.
    결과가 바라는것이 아니더라도 주님께서 허락하신 가장 적절한 은혜인것을 깨닫고 감사하며 사는 믿음이 필요 합니다. 함께 하시는 주님을 항상
    깨닫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오늘의 모든 일상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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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연약하고 부족한 죄인은 많은 사람들이 찾고 원하는 큰길 만을 걸어가는, 거만을 떨어 악을 조장하는 어리석은 삶이 아닌 겸손하고 배려하고 사랑하고 인정해주는 삶을 살아가기가 어렵고 힘이듭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일거수 일투족을 감찰하시고 지팡이와 막대기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확실 믿사오니, 오늘도 그믿음 변치 않도록 말씀을 먹고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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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잠언의 말씀 가운데서 유명한 구절들이 여럿 들어 있는 장입니다. 첫 구절 “마음의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여호와이시다” 말씀과, “사람이 제비를 뽑지만 그 결정은 여호와께서 하신다”는 33절은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와 의지로 우주 만물이 움직인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하나님의 ‘성취’로 이어집니다. 그것을 ‘보는’ 것이 우리에겐 은혜요 특권입니다. 교회력 절기로는 현현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매주 이메일로 뉴스레터를 받아보는크리스찬 (여성) 작가요 강사가 있습니다. “와서 보라 Come and see”는 요한복음 1장을 통해 제자의 소명을 설명하면서 보는 일, 본다는 것 (seeing) 과 믿음의 관계를 생각하게 합니다. 성탄절기 동안에 차례로 켜는 촛불이 성탄절에는 크리스마스 캔들, 크리스마스 라잇이라고 불리면서 그 불은 빛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 됩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이 우리의 마음을 먼저 밝힙니다. 현현절에 그 빛은 ‘와서 보라’는 초대와 명령의 말씀이 됩니다. 우리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으라”는 마태복음서의 구절을 예수님의 유언이요 지상명령으로 받들지만 ‘와서 보라’는 구절 또한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가서 행하라 Go and do’ 와 ‘와서 보라 Come and see’ 두 명령은 책들이 쓰러지지 않게 받쳐주는 북엔드 bookend 와 같습니다. 오늘 본문 16장의 북엔드가 되는 처음과 끝 절은 주 여호와의 지혜가 우리 길의 빛이라고 알려 줍니다. 여호와의 지혜는 창조 때부터 함께 하신 예수님, 우리에게 오신 주, 다시 오실 주님입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볼 수 있게 하소서. 잘 보고 잘 헤아리게 하소서. 우리의 일상은 와서 보는 일과 가서 행하는 일에 열심인 두 자매의 일상과도 같습니다. 예배와 일상의 균형을 잘 잡기를 원합니다. 새벽의 묵상이 하루를 사는 데 필요한 믿음으로 바뀌게 하소서. 주께서 하시는 일을 보며 매일 매일 감탄하고 매일 매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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