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5장: 듣기와 말하기

해설:

이 장에서는 ‘말 하기’와 ‘말 듣기’에 대한 격언이 많이 나옵니다. 지혜를 따르는 사람은 할 말에 대해 깊이 생각합니다(28절). 진실을 말하기 위함이고(7절), 상황에 알맞는 말을 하기 위함이며(23절), 듣는 이에게 도움이 되도록 말하기 위함입니다(4절, 26절). 진실을 말한다는 핑계로 비수같은 말을 쏟아놓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행위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분별 없이 속에 있는 생각을 “가시돋힌 말”(4절, 개역개정 “패역한 혀”)과 “악한 말”(28절)로 쏟아 놓습니다. 그런 말은 그 사람의 본색을 드러낼 뿐 아니라 듣는 이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을 들을 때가 입과 혀를 특별히 조심할 때입니다.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거친 말로 그 감정을 드러내면 분노가 증폭합니다. 그럴 때면 감정을 자제하고 “부드러운 대답”(1절, 개역개정 “유순한 대답”)으로 대응하는 것이 좋습니다. “책망과 훈계”(5절, 10절, 12절, 31절)는 자주 듣는 이의 감정을 상하게 합니다. 말하는 사람이 아무리 좋은 뜻으로 한다 해도, 자신의 허물에 대해 지적 받는 것은 기분 상하게 하는 일입니다. 게다가, 비판하거나 비난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내뱉으면 비수로 마음이 찔리는 것 같습니다. 

지혜를 사모하는 사람은 그런 말을 들을 때 감정을 자제하고 그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할 줄 압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혜 있는 사람은 칭찬하는 말보다 비판하는 말에 더 귀를 기울입니다(22절). 그런 것을 싫어하고 그런 말을 해 주는 사람을 멀리하는 것은 어리석음 중 가장 큰 어리석음입니다(10절, 12절). 그것은 자기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일이 됩니다(32절). 어리석음을 따르는 길은 패망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반면, 지혜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영광이 따릅니다(33절).

묵상:

야고보 사도는 혀를 “불”이라고, “불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혀는 우리 몸의 한 지체이지만, 온 몸을 더럽히며,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지르고, 결국에는 혀도 게헨나의 불에 타버립니다”(약 3:6)라고 말합니다. 말이 가지는 파괴적인 힘에 대해 경고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로써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것에 대해 말하지만, 악한 말은 듣는 이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냅니다. 칼은 육신에 상처를 내지만, 혀는 마음에 상처를 냅니다. 육신의 상처는 적절한 치료를 통해 금새 치료되지만, 마음의 상처는 잘 낫지 않습니다. 날카로운 말 한 마디가 한 사람을 우울증의 깊은 늪에 빠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반면, 적절한 말, 사랑이 담긴 말, 진정성이 있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줍니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면서 던진 한 마디가 듣는 사람의 지옥같은 마음에 빛을 비추어 줍니다. 마음 담긴 한 마디가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 줍니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그래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삼사일언’이라는 사자성어도 나왔습니다. 한 마디 말을 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보통의 경우에도 그래야 하지만, 예민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래야 합니다. 

혀를 검처럼 마구 휘두르며 사는 것이 잘 하는 일이라고 여기는 세태 속에 살고 있습니다. 거친 말, 야한 말, 험한 말을 할수록 주목 받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이방인으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다윗처럼 “주님, 내 입술 언저리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 앞에는 문지기를 세워 주십시오”(시 141:3)라고 기도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잠언 15장: 듣기와 말하기”

  1. 겸손히 듣기보다 지적하고 훈계하는것을 좋아하는 비천한 존재입니다.
    심지어는 필요한것을 구하기만 하고 책망과 말씀을 듣지않는 기도를
    주문같이 외우는 어리석은 처지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허락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이웃의 충고를 감사히 듣고 말씀이 육신이 되신 주님을 순종
    하며 십자가의 거룩한 길을 걸어가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Liked by 1 person

  2. gachi049 Avatar

    말을 함부로하여 듣는이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히고 그 결과 관계를 악화 시킨 죄를 회개 합니다. 말하기보다 듣기를 먼저 하게하시고 타인을 비방하고 비판하지 않고 말할때 한번더 생각할 수 있도록 입술과 혀에 재갈을 채워 주시기를 성령님께 간절히 기도 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Liked by 1 person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어제도 말 때문에 어려운 상황이 빚어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오랫동안 미국 여선교회와 한인여선교회 활동을 하고 있는 교우인데 말 때문에 힘들어 지는 상황을 자주 겪습니다. 그의 의도나 말의 내용 안에 틀린 것은 없는데 듣는 사람 입장에선 불편합니다. 소위 ‘지적질’을 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실제로 ‘당신은 이게 틀렸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경험과 지식이 풍부하고 재주도 많은 사람이지만 같이 일하다 마음 상해 그만 두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어제 사건도 뜻밖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여선교회 훈련을 놓고 몇 사람이 그룹 카톡을 하는 중에 이 사람이 평소에도 자기와 좀 껄끄러운 임원한테 한소리하는 문자를 공개적으로 보낸 것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듣는 사람은 속이 부글부글 끓을 소리였습니다. 한소리 들은 임원은 그 길로 카톡방에서 나갔고 남은 사람들이 알아서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의 동료로 내가 지켜본 바로는 어제 일도 그렇고, 맞는 말을 틀리게 하기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과 일이 벌어지면, 내 말이 틀렸어? 자기한테 필요한 소리를 한거잖아…그가 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맞는 말이어도 그런 식으로 하면 좋게 들을 사람 없다고 말해줘도 안 통합니다. 듣는 사람이 성숙하지 않아 자기 말을 못 받아 들인다고 해석합니다. 성숙하지 않았으니 더더욱 잘 알아 듣게끔 부드럽게 말해 줘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 그렇게 해선 발전이 없다고, 늘 그 수준에 머물고 만다고 답합니다. 이쯤되면 나도 피곤을 느껴 그만하고 맙니다. 말은 하는 것도 어렵고 듣는 것도 어렵습니다. 필요한 말이라고 해도 누구에게 필요한 것인지 잘 생각해 봐야 하고, 안 듣고 싶은 소리를 들을 때도 잘 넘겨야 합니다. 책망을 듣는 자는 슬기롭다 (5절)고 하지만 싫은 소리를 듣기란 괴로운 일입니다. 새겨 듣고 분별을 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좋은 글을 읽으면 곰곰 생각해 양식으로 삼듯이 (말씀을 묵상하듯이) 들은 소리도 내면화할 가치가 있는 지 분별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과 정의에 비추어 보는 지혜를 구합니다. 주를 경외하는 마음이 내 언어 생활의 출발점이 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Liked by 1 person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