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4장 16-35절: 편 드시는 하나님

해설:

14장의 후반부에도 다양한 격언들이 이어집니다. 그 중에 몇 가지 두드러지는 주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조급함 또는 경솔함에 대한 격언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매사에 신중하며, 어리석은 사람은 성급하고 경솔합니다. “자신만만함”(16절, 개역개정 “방자함”) 때문인데,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가장 큰 어리석음입니다. 그런 사람은 성미가 급하여 일을 그르치곤 합니다(17절, 29절). 지혜를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침착하고 신중하여 분별력이 있습니다.

둘째는 가난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말씀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이웃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부자들은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것이 이 세상의 현실입니다(20절). 가난하다고 하여 이웃을 업신 여기는 것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지혜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부자(사회적 강자)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사회적 약자)를 가까이 하고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21절). 그런 사람들을 억압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모욕하는 것이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높이는 일입니다(31절). 이 말씀은 사회적 약자에게 행한 일이 곧 당신을 위한 일이라는 예수님의 비유(마 25:31-46)를 생각나게 합니다. 

셋째는 정치 권력에 대한 말씀입니다. “백성이 많은 것”(28절)은 나라가 평안하고 번영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왕의 영광입니다. 반면 “백성이 적은 것”은 정치 경제적으로 쇠락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나라를 그렇게 만드는 정치 지도자는 몰락의 길을 가게 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지도자라면 중산층과 서민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섬겨야 합니다(31절). 정치 지도자는 “정의는 나라를 높이지만, 죄는 민족을 욕되게 한다”(34절)는 신념을 따라 정의와 공의로 국민을 위해 섬겨야 합니다. 그런 지도자에게는 슬기로운 사람들이 몰려 들게 되어 있습니다(35절). 

묵상:

사회적 약자에 대한 태도와 정치 권력에 대한 격언들이 서로 섞여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율법과 예언의 말씀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사회적 약자들을 편 드신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하십니다. 모두를 사랑하시기에 현실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억압 받는 사람들, 낙오한 사람들 편을 드십니다. 하나님은 모두가 자신의 몫을 누리며 살아가도록 창조하셨는데, 인간의 죄악이 누적되어 세상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약자가 된 데에는 개인의 잘못보다 왜곡된 사회 제도와 구조의 잘못이 더 많습니다. 

타락한 본성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하거나 혐오하거나 억압하고 사회적 강자들에게 줄을 대려 합니다. 부자들의 성공을 칭송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게으름을 비난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일입니다. 죄악의 현실을 은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사회적 약자들을 돌아 보고 그들의 형편이 나아지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평범한 소시민으로서는 자신의 직업 현장에서 혹은 사회에서 활동하는 동안에 시선을 항상 약자들에게 향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런 태도로 살 때, 어떤 힘(정치 권력, 행정 권력, 돈의 힘, 유명세의 힘 등)이 주어지면 그것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늘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며 산 사람에게 어떤 힘이 주어지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편 드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그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이 땅에서 활동하실 때 편 드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편 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잠언 14장 16-35절: 편 드시는 하나님”

  1. 고아와 과부와 장애인들을 멸시하고 살아 왔습니다, 생각과 입으로 믿는
    믿음이 아니라 마음과 손과 발로 믿는 믿음을 원합니다.
    편드시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그분과 동행하며 그분뜻 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Social Justice 를 위해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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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예수님께서는 권력자들에게는 정의를 권했고 가난하고 약자들에게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불쌍히 여기시고 부자들보다 그들의 편에 서셨습니다. 주님! 우리 믿음의 공동체 모두들이 권력자들과 부자들의 횡포와 부도덕에 관해서는 담대하게 지적하고 고치기를 요구하는 담대함을 가질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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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가게를 10년 째 하다 보니 장사 경험이 제법 쌓였습니다. 소매업 (리테일)은 손님을 직접 마주하는 일이라서 이런 저런 손님을 많이 봅니다. 사람에 대한 관찰과 공부가 필요하다면 우리 가게 같은 데서 일을 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손님이 가게에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으니 그 때 보여주는 행동에 연구할만한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평소에 무심한 상태에서 하는 행동이 드러내는 심리에 예민한 전문가에겐 보물창고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혼자 오는 손님은 개인의 특징으로, 누군가와 함께 오는 손님은 그들 사이의 다이내믹으로 인해 흥미로울 때가 많습니다. 손님이 자기가 좋아하는 요거트와 타핑을 담아 계산대에 와서 계산을 하는 짧은 시간 사이에 나와 나누는 대화나 거래는 지극히 제한적이지만 사람 사이의 소통이 언어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커뮤니케이션학 기본 원칙은 늘 유효하고 유익합니다. 손님의 옷차림, 표정, 제스츄어, 태도 등이, 또 손님의 입장에선 나의 표정과 어서 오시라는 목소리의 톤, 옷매무새 등이 실제의 대화보다 앞섭니다. 가게 안의 관찰이 주로 손님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 반면 가게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도 10년 세월 동안 많이 일어났습니다. 양 옆에 있는 가게들은 나의 ‘이웃’입니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잘못하지 않으니까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엔 “중간만 가면 잘하는” 것이라는 말이 거의 모든 상황에 맞는 것 같습니다. 큰 도시라서 샤핑 몰에 홈리스들이 많습니다. 가게들 앞 패티오, 파킹랏, 빌딩들 사이 구석…우리 가게 앞에 아침부터 밤까지 서 있는 단골 홈리스가 있었는데 1년 넘게 ‘출퇴근’을 하다 다른 샤핑몰로 옮겨 갔습니다. 혼잣말을 하며 담배를 피는 홈리스였습니다. 나와 통성명을 했지만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해도 반응 없는 날이 많았습니다. 정신병력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무슨 병인지는 몰랐고, 우리 손님이나 행인들을 방해하지 않는 그를 일부러 쫓아낼 필요는 없었습니다. 가게 바로 앞에 커다란 쓰레기통이 있는데 그 통을 뒤져 먹을 것을 찾는 홈리스들이 가끔 있습니다. 머리로 생각하는 ‘배고픈 사람’과 내 앞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배고픈 사람은 다릅니다. 처음 봤을 때 충격이 대단했습니다. 가게에 있는 바나나를 주기도 하고, 옆의 스타벅스에서 기프트 카드를 사다 주기도 했습니다. 우리 가게 앞을 지나는 행인들 중엔 건너편 햄버거 집에 홈리스를 데리고 가서 음식을 사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가게에 같이 들어와 계산해 주는 손님도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라는 분류가 예전처럼 명확하지 않습니다. ‘소외 계층’이라고 하나로 묶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묶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사람마다 스토리가 있고 스토리마다 승리와 패배의 순간이 있고, 기쁨과 슬픔의 계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자 만이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소시민인 나도 ‘권력’이 있습니다.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사람이 약자인지 아닌지 생각할 틈이 있다면 그건 권력에서 나오는 여유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남을 도울 수 있는 능력 자체가 권력이라는건 참 슬픈 일인데 그게 나의 현실일 때가 많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무조건 도와주는 것이 답은 아닙니다. 설령 그렇게 주장한다 해서 늘 그러지는 않습니다. 자기 것은 놔 두고 남의 것으로 돕겠다는 ‘계산’과 ‘방법’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구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 고민됩니다. 좋은 이웃, 좋은 시민, 좋은 크리스찬…31절에서 답을 찾아 봅니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저들을 만드신 주를 멸시하는 것이며, 궁핍한 자에게 베푸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 ‘베푸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를 보아도 연민과 공감의 마음으로 대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겨울비가 오는 아침에 주님의 은혜를 묵상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받은 사랑을 나눌 줄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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