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3장: 정의로운 세상을 향해

해설:

13장에서도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모습을 대비한 잠언이 주를 이룹니다. 이 장에서 자주 반복되는 주제는 경청하는 자세와 물질의 문제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조언과 충고에 귀를 기우리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고집대로 합니다(1절). 충고는 기분을 상하게 합니다. 훈계와 책망은 더욱 그렇습니다. 지혜있는 사람은 그 모든 것을 달갑게 여기고 받아 들입니다(10절, 18절).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합니다. 그것은 스스로 망하는 길입니다(13절).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과 어울리는 것은 큰 유익이 됩니다(20절). 

다른 하나의 주제는 물질에 관한 태도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가난하다는 사실을 부끄러워 하지도 않고 부하다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여기지도 않습니다(7절).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근면하게 일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시는 대로 감사히 받고 자족하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불로소득을 반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손에 쥐는 순간 모래처럼 빠져 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땀 흘려 얻는 소득을 기뻐합니다(11절). 그런 사람의 재산은 대대손손 이어집니다(22절). 성실하고 근면한 삶의 태도를 유산으로 물려 받았기 때문입니다. 

잠언에 수록된 지혜의 말씀들은 주로 개인적인 윤리에 대한 것들인데, 그런 점에서 23절은 예외입니다. 경제 정의가 바로 서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경제 정의가 바로 선 사회에서는 각자가 자신의 노력만큼 보상을 받습니다. 경제 정의가 깨어지면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쉽게 자신의 부를 늘려 갑니다. 

24절은 무지몽매한 사람들에 의해 오용되어 온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자녀에게 분노를 쏟는 도구로 사용한 것입니다. 이 구절이 동의적 병행법으로 표현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매를 아끼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문장과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훈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문장은 쌍을 이룹니다. 따라서 “매”는 “훈계”에 대한 비유입니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 자녀에게 매를 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이 말씀은“또 아버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엡 6:4; 골 3:21)라는 말씀의 빛에서 읽어야 합니다.  

묵상:

앞에서 우리는 지혜가 처세술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처세술은 자기 중심적인 생존 전략을 말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 자신만은 살아남고 번영하는 기민한 생존 전략을 가리킵니다. 반면, 지혜는 나도 잘 되고 다른 사람도 잘 되는 길을 제시합니다. 잠언에 수록된 지혜의 말씀들은 주로 개인의 태도와 행동에 대해 말하지만, 그것은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지향합니다. 한 사회의 다수의 사람들이 잠언의 지혜를 따라 산다면, 그 사회에는 정의와 평화가 자리 잡을 것입니다. 따라서 23절에서 보는 경제 정의에 대한 관심은 돌출된 발언이 아니라 잠언 전체의 저변에 흐르는 정의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보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관심사가 우리 자신에 국한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에 정의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힘쓰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해야 하는 일입니다. 나 혼자만 잘 되는 일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운명을 같이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나 하나가 지킨 정직과 진실과 정의는 이웃과 우리 사회에 대해 우리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섬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처세술은 쉽습니다. 나의 이익만을 생각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지혜의 길은 때로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의 형편까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사회적 약자들의 형편을 돌아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몫의 일부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배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정과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이렇게 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혼자만 바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자주 받게 됩니다. 게다가 세상은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알아주고 존중하기 보다는 미워하고 배척합니다. 그런 사람들로 인해 자신들의 불의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혜의 길을 따르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바로 잡으시는 하나님께서 지켜 보시고 다스리신다는 견고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모든 것을 바로 잡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만 “의인은 배불리 먹지만, 악인은 배를 주린다”(25절)는 말씀에 동의할 수 있습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잠언 13장: 정의로운 세상을 향해”

  1. 생각없이 내 뱉은 말로 화를 불어 온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보혈로 먼저
    나의 내용과 모양이 정결하게 되어 지금 부터라도 상대방 에게 위로와
    소망과 치유를 전하는 축복의 말만 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재물의 유산이 아니라 십자가 믿음의 유산을 자녀들에게 남기도록 도와
    주십시오. 가정과 사회와 나라의 빈부의 차이가 점점 심해져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렵습니다. 소외된자들과 함께하는 사귐의 소리 가족들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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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사회가 점점 악해져가고 부유한 자와 가난한자, 강자와 약자들이 극명하게 나누어져 가난한자와 약자들은 설땅이 없어 지고 있습니다. 주님! 믿음의 공동체들이 이들을 기억하게 하셔서 그들을 돕고 나누며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시고 아직도 주님을 영접하지 못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주워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하나님의 손길을 구하는 자들이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주님의 마음을 담아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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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오늘 본문 13장은 앞의 장과 비교해 덜 매끄럽습니다. 메시지 영어 성경으로 읽어도 어색한 구절이 있고 한글 번역과 동떨어진 느낌을 주는 데도 있습니다. 신자가 아니어도 기본적인 삶의 원칙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좋은 것만 하면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자기부터 챙기는 것은 본능이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협동과 타협을 하면 더 큰 이익을 반복해서 취할 수 있다는 계산도 할 줄 압니다. 생존에서 번영으로 나가는 길을 터득하기도 하고, 단순 노동을 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 시키기도 합니다. 선한 의지를 지혜롭고 선하게 사용할 수도 있고, 본능과 욕망에게 주도권을 넘겨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교훈’이나 충고, 가르침, 책망 등이 필요합니다. 생각의 원을 넓혀 주는 훈계가 필요합니다. ‘나’를 넘어서는 가르침을 들어야 합니다. 13장의 구절들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중에도 21절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서 보게 만듭니다. “재앙은 죄인을 찾아 다니고 선한 보상은 의인을 따라다닌다.” 우리의 행동에 결과가 따른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죄의 값을 받으러 온 재앙이 문을 두드리는 광경이 그려집니다. 잊고 흘러간 의의 열매가 예기치 않은 보상을 가져옵니다. 우리는 뭔가를 하는 데 바빠서 결과를 잊기도 합니다. 내 말의 메아리, 행동의 결과를 생각해 보는 여유 조차 없이 그저 바쁘고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헐리웃 영화계 이야기입니다. 배우들이 출연 계약을 할 때 내거는 특이한 조건들을 다룬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 멕시칸계 배우인데 ‘악역 전문’입니다.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무척 거칠고 무섭습니다. 악역 외에는 오퍼가 들어오지 않는답니다. 그는 계약서를 쓸 때 ‘내 역할은 끝에 꼭 죽는다’라고 넣는 것으로 유명하답니다. 웬만한 배우들은 반대로 ‘절대 죽지 않는다’라는 조항을 넣습니다. 그 작품이 성공하면 후속이 계속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자기 역이 죽지 않아야 또 출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배우는 자기역이 꼭 죽게 하라고 씁니다. ‘나쁜 사람은 꼭 벌을 받는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 랍니다. 자기 아이들이 영화를 보고 나면 아버지가 평소에 말하듯이 나쁜 짓을 하면 (죽음이라는) 값을 치루게 된다는걸 보여 주고 싶어서 랍니다. 살면서 당하는 재앙이나 고통이 모두 다 나의 죄의 값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 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의 미래를 위해서 언제나 선하고 지혜로운 일을 도모하는 데 애를 쓰기로 결심합니다. 주님의 은혜로 사는 삶입니다. 감사와 겸손을 마음에 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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