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0장: 일과 말의 지혜

해설:

10장부터 22장 16절까지는 솔로몬의 잠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장에서부터는 지혜의 말들이 특별한 주제나 틀 없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학자들은 저변에 흐르는 주제나 구조가 있는지를 찾아왔지만 아직 뚜렷한 것을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마다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이 없습니다. 솔로몬에게서 시작되어 형성된 지혜의 말들이 모아져 있다고 보면 됩니다.

10장에는 여러 가지 주제의 잠언이 ‘반의적 병행법’(antithetical parallelism)으로 나열되어 있습니다. 거의 모든 문장이 지혜와 어리석음, 의인과 악인, 미덕과 부덕을 대조시켜 보여 줍니다. 10장 전체를 꿰뚫는 주제는 없지만,  몇 가지 주제가 반복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반복법‘은 어떤 주제를 강조할 때 사용되는 수사법입니다.

첫째, 인간사의 배경에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다는 사실이 거듭 강조됩니다(3절, 22절, 27절). 지혜를 따르면 복을 누리고 어리석음에 머물러 있으면 불행을 당하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지혜를 따라 세상을 지으셨고 지금도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한 때 ‘이신론자들’(Deists)은, 창조자가 우주에는 자연법칙을 부여하시고 인간에게는 이성을 부여하셔서 스스로 알아서 살게 하시고 손을 떼신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주의 운행과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일하셔서 창조 원리가 작동하게 하십니다.   

둘째, 바른 언어 생활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집니다. “입”, “입술”, “혀”, “말”이라는 단어가 쏟아져 나옵니다(6절, 8절, 10절, 11절, 13절, 14절, 18절, 19절, 20절, 21절, 31절, 32절).ㅜ언제 말하고 언제 침묵해야 하는지, 말을 한다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어리석음은 마음에 있는 말을 절제없이 내 뱉으며 이웃을 해치는 말을 거침없이 내밷도록 만듭니다. 반면, 지혜로운 사람은 꼭 필요한 때에, 꼭 필요한 말을 할 줄 압니다.  그래서 의인의 입술은 많은 사람을 살게 하고, 어리석은 사람의 입은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만듭니다.

묵상:

동서양의 모든 종교와 철학은 언어 생활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 이유는 먼저, 어떤 말을 하느냐에 의해 말하는 사람이 지배 당하기 때문입니다. 내 속에 있는 생각을 말로 표현하면 그 생각이 강화되고 자제하면 그 생각이 약해집니다. 마음 속에서 악한 생각이 일어날 때 욕설을 섞어 표현하면 그 악한 생각이 더 강해집니다. 반면, 감사의 마음이 일어날 때 그것을 말로 표현하면 감사의 심정이 더 커집니다. 분노가 속에서 들끓을 때 그것을 말로 표현하면 분노가 더 강렬해집니다. 우리가 입에 올리는 말이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지배하고, 생각과 감정은 행동을 지배하고, 그 행동이 결국 인생을 결정합니다. 

언어 생활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내 입에서 나온 말이 듣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칼로 낸 상처는 며칠 만에 아물고 그로 인한 고통은 잊힙니다. 하지만 말로 낸 상처는 두고 두고 피를 흘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진심을 담아 던진 한 마디가 어둠 속에 있는 사람에게 빛을 던질 수 있습니다. 죽음의 경계선에 밀려 있는 사람을 살려낼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지혜를 따라 살기를 소망하는 사람이라면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님, 내 입술 언저리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 앞에는 문지기를 세워 주십시오”(시 141:3)라고 기도했고, 속에서 분노가 들끓을 때 “나의 길을 내가 지켜서, 내 혀로는 죄를 짓지 말아야지. 악한 자가 내 앞에 있는 동안에는, 나의 입에 재갈을 물려야지”(시 39:1) 하고 다집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혀는 불이요, 혀는 불의의 세계입니다”(약 3:6)라고 했습니다. 

지혜를 찾는 이들은 말 수를 줄여야 하고, 말을 하기 전에 적어도 세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첫째는 “이 말은 참말인가?”를 생각해 보고, 둘째는 “이 말은 나에게 혹은 상대방에게 필요한가?”를 생각해 보고, 셋째는 “이 말은 친절한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바울 사도가 말한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엡 4:15) 거룩한 습관이 형성됩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잠언 10장: 일과 말의 지혜”

  1. 지난날 생각없이 내 뱉었던 말로 많은 사람들 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힌것을 고백
    합니다. 말하기전에 먼저 기도하는 습관이 필요 합니다. 지금 부터라도 상대방에게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으로 위로와 소망과 용기를 주는 말을 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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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achi049 Avatar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지혜의 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귀를 열어주시고 말 한마디를 할 때 한 박자 늦추어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신중하게 말을 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입술과 혀 뿌리를 통제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고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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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오늘 본문을 읽는데 옛날 생각이 납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었습니다. 당시 사회 분위기는 반공과 새마을 운동 두 가지가 주류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새마을 운동은 “잘 살아보세” 캐치 프레이즈와 연결됩니다. 전국민의 기도요, 주문이었습니다. “게으른 손은 가난하게 만들고 부지런한 손은 부유하게 만든다 (4절).” 당시 티비에서는 농번기 농한기 가릴 것 없이 수입이 될 만한 일들을 찾아 부지런하게 일하는 농민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개미와 배짱이’ 동화는 단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살고 놀면 굶어 죽는다. 개미와 배짱이를 어떻게 같이 비교할 수 있는지, 배짱이도 노래 부르는 ‘일’을 한 것은 아닌지, 개미들은 모두 배짱이를 미워했는지, 혹시 노래를 들으며 일하는 게 좋지는 않았는지, 개미는 배짱이에게 양식을 나눠줄 수 없었는지…경제적인 발전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자는 것이 새마을 운동의 기본 강령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런 캠페인이 먹히지 않을 것 같은데, 이제는 사람들이 ‘깨서’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의 구호를 무조건 받아 들일 것 같지 않은데 어제 아이오와 주의 공화당 당원대회에서 트럼프가 압승을 거둔 것을 보면 (예상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싶습니다. 언어의 힘일까요. 단순함의 승리일까요. 식지 않는 잠언의 인기일까요. 트럼프를 보고 지혜를 떠올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 같은데 그가 미국의 (따라서 세계의) 대통령이 또 되어야 세상이 좋아질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이리도 많습니다. 잠언서를 읽고 이해하며 묵상하는 방법이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 글에선가 잠언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성서의 이상과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잠언서가 보장하는 세상은 이 땅에는 없는, 어느 시대에도 불가능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잠언서를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오늘 10장에서 솔로몬은 악인과 어리석은 자를 저주합니다. 반복해서 읽다가 24절이 마음에 와 박힙니다. “악인은 두려워하는 것을 당하게 되고 의인은 그 바라는 것을 얻게 된다.” 나의 내면이 현실에 투영되는 때가 있습니다. 생각하고 품고 있던 것이 나의 언어로 세상에 나가고, 그렇게 나간 언어가 현실이 되어 내 앞에 섭니다. 지혜를 바라기에 지혜와 만나게 되면 좋겠습니다. 어리석은 악인으로 살다가 어리석음에 함몰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붙잡을 수 없을 것같은 잠언서의 세계를 마음에 품습니다. 그런 세계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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