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3장: 창조 원리를 따라 사는 삶

해설:

1절부터 12절까지에서 저자는 지혜의 유익에 대해 여러 가지 말로 강조합니다. 먼저, 지혜를 소중히 여기고(1절) “인자”(헤세드)와 “진리”(에메트)를 따라 살면(2절) 오래 살면서 평안을 누리고(2절)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혜를 입고 귀중히 여김을 받을 것”(4절)이라고 말합니다. 지혜를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고 악을 멀리 하며 주님의 인도를 따릅니다(5절, 7절). 주님께서는 그들을 형통하게 하시고(6절) 건강하게 하실 것입니다(8절). 그런 사람은 최선의 것으로 주님을 섬길 것이고(9절) 주님은 그에게 복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10절). 

지혜의 유익에 대해 이토록 강조하는 이유는 미숙한 사람들에게는 지혜를 따르는 것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불편하고 고통스러워 보이는 명령을 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훈계와 책망을 거부하지 말아야 합니다(11-12절).

지혜를 찾고 명철을 얻는 사람은 진실로 복된 사람입니다(13절). 지혜는 세상 어떤 것보다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14-15절). 사람들은 장수와 부귀영화와 즐거움과 평안의 복을 원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지혜의 열매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16-17절). 그것은 에덴 동산에 있었던 “생명나무”(창 3:22)와 같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생명나무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는데, 지혜는 불완전 하나마 그 열매를 맛보게 해 줍니다.  

18절과 19절은 지혜가 생명나무의 역할을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천지창조의 원리로 삼으셨습니다. 지혜를 따르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21절부터 26절까지는 지혜가 인생 여정에서 만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 줄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27절부터 31절까지에서는 이웃과의 관계에 대해 가르침을 줍니다. 도움을 청하는 이웃에게 선을 행하고, 해를 끼칠 생각은 품지도 말아야 합니다.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는 사람과 맞서지 말고, 악한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지혜는 나 혼자만 잘 살려는 자기 중심적 처세술이 아니라 모두를 이롭게 하는 창조 원리라는 사실을 여기서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32절부터 35절에서 저자는 지혜의 유익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주님은 지혜를 따라 사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고 복을 내려 주시며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물려 받습니다. 반면, 주님은 교만하여 지혜를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 악을 일삼는 사람들을 징계하십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현명하다고 하지만 실은 정말 “미련한 사람”입니다. 

묵상:

3장에 나오는 지혜의 유익에 대한 설명을 읽다 보면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혜는 내면의 평안과 육체적인 건강과 물질적인 번영을 확보해 주는 능력이며, 인생사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불행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능력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기복신앙 혹은 번영의 복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기 위해 힘써온 사람들이라면 이 말이 늘 진실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것입니다. 인생사를 너무 단순화시킨 말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고 늘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에게도 불행은 찾아옵니다. 질병과 장애를 겪을 수도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현실을 생각하면 이 장에 나오는 지혜에 대한 설명에 갸우뚱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여전히 진리입니다. 18절과 19절에서 말한 것처럼, 지혜는 하나님의 창조 원리입니다. 요한복음은 그것을 “로고스”(1:1-5)라고 표현했습니다.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지혜는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 정도로 여기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께서 우주의 운행과 인생 살이의 기본 원리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뜻과 섭리를 따라 사는 것은 창조 원리를 따라 사는 것입니다. 인류 모두가 그렇게 산다면, 모두가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죄로 인해 접근할 수 없었던 생명나무 열매를 맛볼 수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인류의 절대 다수는 창조 원리를 따라 살기를 거부하고 각자 자신의 소욕대로 살아가기를 택했습니다.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스스로 외면한 것입니다. 

그 까닭에 지혜를 따라 살기를 힘쓰는 사람도 인생사의 여러 가지 불행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완전히 망가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은 아직 남아 있고, 이 세상에는 성령께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사는 것은 죄악된 이 세상에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앞 장에서 말한 것처럼 “세상은 정직한 사람이 살 곳이요, 흠 없는 사람이 살아 남을 곳”(2:21)입니다. 


Comments

3 responses to “잠언 3장: 창조 원리를 따라 사는 삶”

  1. 전지전능의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영혼에 깊이 아주 깊이 각인 하기를 원 합니다. 그분의 생활을 배우고
    깨닫고 그의 뒤를 어렵고 힘들어 보이는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가장귀하고 소중한 하늘의 지혜이고 명철 과 분별력
    인것을 고백합니다. 사랑과 구원의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를 세상에 알리는
    삶을 살아내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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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이 시대의 원리는 무엇일까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존중하고 따르고 지키는 원칙은 무엇일까요. 종교의 영향력은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사유나 철학을 높이 평가하지만 대중적으로 지속적인 호응이 따라오지 않습니다. 자본과 권력의 인기는 수직상승입니다. 자본과 권력은 서로에게 보험이 되어 줍니다. 체제와 이념이 다른 국가들도 자본과 권력이 많을수록 좋다는 데 동의합니다. 팬데믹의 손아귀에서 지구를 풀어준 것은 과학이었습니다. 과학의 발전과 도움 덕분에 바이러스의 전파가 수그러졌습니다. 그렇다고 대중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 된 것은 아닙니다. 어떤 면에선 선동과 유혹에 더욱 취약해졌습니다. 감정 조절이 잘 안되는 성인들이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잠언은 한 사회에서 통하는 원칙과 사고방식 같은 것들입니다. 사회 구성원들끼리 이해하고 ‘알아 듣는’ 말들입니다. 이를테면 ‘집단지성’입니다. 3장도 지혜의 중요성을 계속 말합니다. 여호와를 신뢰하고 그분을 인정하라고 아들에게 재차 부탁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보석보다 값지니 네가 탐하는 그 어떤 것과도 비길 수 없다 (15절)’는 말씀을 깊이 묵상합니다. 이 말씀에 동의하는지…믿는지…원하는지…내게 물어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러라고 할 수 있는지…우리 사는 모습이 그런지…아멘! 어지러운 시대를 살면서 쓰러지지 않는 것은 주님이 우리의 중심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종교를 넘어 믿음의 자리로 가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양식으로 삼으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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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achi049 Avatar

    아담과 하와가 지혜의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므로 에덴 동산에서 쫒겨나서 고통과 죄악된 세상에서 살아온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하여 점점 강해지는 사탄들의 미혹에 빠져드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닥쳐 오더라도 시선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께 고정시키고 심판 주로 다시오실 예수그리스도를 기다면서 주시는 하루하루를 사랑하고 베풀며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동행하시고 도와 주시옵소서. 아멘.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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